인형
포대희에서 사용되는 인형의 기본 구조는 몸체 (身架), 의복, 투구 (머리장식 일습)으로 분류된다. 몸체는 목제의 두부, 천으로 만든 신체 부분, 목제의 손, 천으로 만든 다리, 목제 신발을 포함하며 전통적인 인형의 크기는 약 80cm 정도이다. (역주: 앞부분에서는 30cm라고 했음. 작성자가 달라서 오는 오류로 보임)
사진: ㅋㅋ 현대 포대희 인형의 손 부분 ㅋㅋㅋ 숙련된 조교 엽소채 킁의 손.
종류에 따라 분류하면 포대희의 역에 의해 포대희 인형도 생, 산, 정 크게 셋으로 분류되고 이를 다시 출생(出生), 화검 (花臉), 단, 신도, 정괴, 잡각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인형사가 일담롱(一擔籠)이라 속칭하는 이러한 인형은 전통포대희에서는 포대희 하나를 상연할 때 이 6개의 분류 아래 각종 80종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인형 머리는 과거에는 중국 천주에서 많이 제작되었다. 1920년대 이후 타이완에서 틀을 사용한 두부 (새옥락 賽璐珞) 제작이 시도되었지만 여전히 천주에서 수입한 당산두(唐山頭: 당산두가 고유명사인지 알머리 같은 보통명사인지 찾다가 포기..)가 주로 사용되었다. 당산두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도문두(塗門頭)와 화원두(花園頭)가 있다. 도문두는 주로 천주 도문거리의 주면(周冕)을 칭하며 타이완에서는 도두(塗頭)라 불리며 화검 종류가 특히 유명하다.
화원두는 천주 환산향 화원(지명임)의 목재로 생산되며 생, 단 등을 만든다. 천주산의 머리 재료료 사용되는 목재 대부분은 은행나무나 향나무가 사용된다. 반대로 타이완에서는 오동나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제작 과정은 초벌 깎기, 연마, 얇은 종이를 바른 후 베이스가 되는 토지(土底)라 부르는 것을 바르고 표면에 파운데이션 처리를 한 후 얼굴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머리와 수염을 붙인다.
각본
포대희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인형과 음악에 의해 전승되어 많은 각본이 구전되거나 이야기 꾼이 출연자에게 읊어 준 내용에 따랐기 때문에 책으로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당시 구전으로 전해지던 내용으로는 삼국지연의, 서유기, 봉신연의, 수호지 등이 주를 이루었다.
1945년 이후 장천 지역 (漳泉地区)의 포대희가 쇠퇴하면서 타이완포대희만 발전을 계속하게 된다. 타이완포대희 장인 황해대(黄海岱)는 많은 제자를 모집하고 기술 전승을 위해 직접 ‘오호전청룡 (五虎戦青龍), 대당오호장 (大唐五虎将), 삼문가(三門街), 곤도일사(昆島逸史), 비도유서 (秘道遺書)의 각본을 문서로 남겼다. 또한 1960년대 황준웅 (黄俊雄)이 저명한 포대희작품인 운주대유협 (雲州大儒侠) 각본을 황해대가 충효의용전(伝忠孝義勇伝)을 완성했다.
사진: 황준웅 포대희 운주대유협 사염문.장경인
이 운주대유협에서 파생된 스토리라인은 천지회사의 금광포대희로 현재까지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장주의 장주목우희단(漳州木偶劇団)이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 이후 아동극 원본을 가지고 각본을 만들었으며 타이완에서도 시민애호가들 사이에서 이 방식이 시도되었다.
그렇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전통 각본과 즉흥적인 타이완어 구백이 포대희의 큰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
포대희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면 ‘무림구사 (武林旧事), 동경몽화록 (東京夢華録) 등의 고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송대 궁정에서 행해진 연회에서 벌어지는 여흥 중에 이미 인형극이 있었고 현재 전해지는 포대희와 내용은 다르지만 인형극이 주천을 그 발상지로 삼는다는 근가가 되는 고사로 널리 전해진다.
명대에 이르러 과거에 몇 번이고 탈락한 양병린 (梁炳麟)이 복건성 선유현 유현구리호 (福建省仙游県九鯉湖)에 있는 선공묘에 급제를 기원할 때 꿈속에 한 노인이 양병린의 손에 공명귀장상 (功名帰掌上 공명은 손바닥 위로 돌아온다) 이라는 글을 썼다. 이를 길조로 삼은 양병린이었지만 시험에 또 떨어졌다. 실망한 양병린은 인형극을 배우기 시작하고 인형 속에 손을 넣는 방식을 접목했다. 더불어 문학에 조예가 깊고 각종 패관야사를 채용한 이야기가 관객을 매료시켜 여기서부터 포대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외에 명대 융경(1567년-1572년)연간에 복건성 용계현(龍渓県)에서 과거에 낙방한 손교孫巧 가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사진: 양병린으로 검색해서 나온 이미지. 공명은 손바닥위에 그 고사를 일러스트로 그린 듯한테 출처를 알 수 없다. 문제시 나중에 삭제함.
17세기 중반 포대희는 상당한 인기를 끌며 견단극(肩担劇) 스타일을 갖추게 된다. 견단극은 간이 무대를 설치하고 무대 아래에 자리잡은 인형사가 위에 있는 인형을 조작하는 예능이다. 18세기에 이르면 여러 지역에서 제각각 직업 포대희 극단이 나타나 야외에서 하는 야외극과 실내에서 하는 실내극으로 분류되었다. 이 중 야외극은 각 지방을 돌면서 때에 따라서는 각종 신에게 감사하는 예능으로 변화하기고 하면서 간단한 무대장치와 소수의 출연자들에 의해 상연되었다.
실내극은 18세기에 등장하지만 가장 크게 유행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실내극은 화려한 무대장치와 야외극에 비해 많은 수의 인원이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실내극은 다른 실내 극 종류와 마찬가지로 무대장치를 배치하고 사람대신 인형을 사용한다. 때문에 경극이나 영화 연출 효과와 중복되기 때문에 실내극은 점점 쇠퇴하여 1980년대에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복건. 타이완에서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이 실내극 방식은 1960년대 1960년대 TV포대희라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TV세트 안에서 포대희를 연출하는 것으로 타이완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케이블 TV와 DVD, 영화 등의 매체로 발전하게 된다.
포대희 역사 부분은 옛날 이야기 같아서 재미있다.ㅋㅋ 과거에 낙방한 선비님.ㅋㅋ 로또 번호 찍어 주세요. 하니까 고용노동청 전화번호 찍어 준거잖아.ㅋㅋㅋㅋ.저 공명은 손안에... 글도 꽤 멋진데 나중에 맘에 드는 사람 만나면 손을 덥썩 잡고 손바닥에 써줘야 겠다. ㅎㅎ 아무튼 한 반쯤 온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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