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파

 

17세기 복건성에서 시작된 포대희이지만 그 후에는 복건에서 타이완으로 그 지역이 넓어졌으며 각 시대마다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기 때문에 유파를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

전통적인 포대희 유파는 음악에 의해 분류한다. 남관南管(타이완 전통 기악 종류)을 사용하는 유파를 남파포대희 (남관포대희), 광동의 조주(潮調: 광동지역의 음악 형식)를 사용하는 유파를 조주포대희(潮調布袋劇), 북관(北管 타이완 전통 기악 종류)을 사용하는 북파포대희(北管布袋劇)로 칭한다.

20세기 이후 타이완에서는 장주의 북관문무극에 경극에서 쓰이는 나고(鑼鼓)를 사용한 외강포대희 (外江布袋劇)와 가자희 (歌仔劇: 타이완 오페라)의 노래를 사용한 가자포대희(歌仔調布袋劇)가 탄생하게 된다. 후자는 현재 타이완에서 장주로 역수입되었다.



사진) 나고 출처는 이 곳. 

http://big5.huaxia.com/zhsx/sjfq/fwzwhyc/2009/04/1388283.html

 

또한 포대희를 지역에 따라 분류해 보면 문희(文戯)를 특징으로 하는 남파는 주천에서 성행했다. 음악은 남관악을 채용하고 唱腔(창강 중국 전통 노래 곡조)도 남조를 채용했으며 당대부터 전해지는 이원극 (梨園劇: 중국 전통 연극 형식)의 영향도 받았다. 장주포대희는 광동 조주(潮州)와 인접한 일부 지역에서 조주포대희가 상연되는 것 외에는 북관악을 사용한 북관포대희가 대부분이다. 북파는 무희(무를 다룬 극)를 잘 다루며 창강은 북조로 한조(漢調),곤강 (昆腔), 경조 (京調) 등이 사용되며 경극의 영향도 받았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포대희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다른 문화 매체와 융합하여 남북양파의 분류가 점점 불명확하게 되었다.

 

타이완에서는 남북양파 포대희가 모두 성행했다. 남파의 극 내용은 주천에서 유행하는 연극 종류와 비슷한 것이 많았지만 타이완에 전해진 이후에는 백자 (白字)라고 칭해지게 되었다.

이 스타일의 포대희는 극단 구성원은 타이완 중부 운림현의 태서(台西), 맥료 (麥寮), 포충 (褒忠), 동세 (東勢), 사호 (四湖) 등의 출신이 많고 타이완 북부에서 특히 인기가 있다.

북파는 타이완에서는 난탄(乱弾)이라고 부르며 장천을 그 기원으로 하는 무희를 중심으로 한다. 이쪽 극단 구성원은 운림현 두륙(斗六), 서라 (西螺), 두남 (斗南), 호미 (虎尾), 고갱 (古坑), 이륜 (二崙) 등의 출신이 많으며 타이완 남부에서 인기가 있다. 이 외에 타이완 포대희는 등장인물에 의한 분류도 가능하다. 이를 각파(閣派), 원파 (園派)라 나누는데 황해대가 원파의 대표 인물이며 오주원(五洲園 역주: 황해대 선생이 일제강점기동안 이끈 오주원인형극단)을 거쳐 제자들에 의해 벽력포대희로 발전하게 된다.

 

 유파명칭  

 유파 별칭

 유행 지역

 악기 곡조

 단원 출신 지역

 남파포대희

 남관포대희

 주천,타이완북부

 남관

 천주, 운림현

 북파포대희

 북관포대희

 장천타이완 중남부

 북관

 장주, 운림현

 조주포대희

 조천포대희

 광동조주,장주 동산

 광동 주조

 광동복건

 외강포대희

 경극포대희

 장주, 타이완 타이페이

 북관경극 나고

 장주타이페이

 가자조포대희

 

 장주,  타이완

 가자조

 장주타이완



각 지역에서 발전

 

문헌에는 양병린이 포대희의 시초라고 전해지지만 역사적인 사실로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

하지만 포대희와 주천의 괴뢰극문화가 (傀儡劇 역주: 실로 하는 전통 인형극의 한 형식.일종의 마리오네트) 서로 관련이 있음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복건지역 포대희 발전 과정에는 주천포대희의 영향이 있었음이 널리 인정되기 때문에 천주가 포대희의 발상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오랜 전승과정 중에 주천포대희는 인형전통예술의 한 분파가 되어 이 지역 인형공예도 괴뢰(실 인형)을 중심으로 발전한다. 이에 반해 장천 지역과 타이완에서는 천주를 능가하는 발전을 보인다. 1950년 이후 타이완에서는 전통포대극 개량이 붐을 이루어 장주 양 지역을 넘어서는 예능으로 발전하게 된다.

 

천주 泉州

 

문헌에 의하면 1730년부터 1760년 동안 천주지역에 포대희가 상당히 유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천주포대희는 인형이나 무대장치, 음악 등이 괴뢰희의 강한 영향을 받아 극 내용도 신에게 감사하거나, 받아들이거나, 제사지내는 내용 등이 행해졌다. 1798년 기록에 남은 중국 최초의 전문 포대희극단으로 금영성우극단 (金永成偶劇団)이 탄생하여 기존 괴뢰조를 발전시키고 여기에 문희를 섞어 정밀한 인형과 천주 특유의 연출을 가한 남조포대희가 탄생하게 된다.


사진 : 천주 지도 저 지역 오른쪽이 바로 타이페이 섬이다.


19세기에 이르러 천주남조포대희는 큰 성황을 이룬다. 이 시기 중국 각지에 포대희가 널리 퍼지고 괴뢰극에서 비롯된 내용 외에 인형조작 기술을 중요시한 이원포대희가 탄생한 것이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이다. 20세기 초반 이원포대희에서 다시 노래를 중시한 농저극 (籠底劇)이 탄생한다. 하지만 대본의 창의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민간에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후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음악과 남관을 사용하는 등 개량을 거듭하고 독자적인 문희도 접목하지만 타이완포대희나 장천포대희에 비교해 시대에 뒤처지게 되어 포대희를 대표하는 지위를 잃고 만다.

20세기가 되면서 중국정부의 주도로 민간예능 보존과 육성이 장려된다. 이 결과 1953년에 전문 극단인 진강장중목우극단 (晋江掌中木偶劇団)이 탄생했다



사진: 진강장중목우극단의 오피셜 이미지. 


이 극단은 남관과 이원을 접목시켜 백룡공주(白龍公主), 오리장 (五裏長) (무지개) 등의 극이 중국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상연되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혁명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1980년대 이후 이 상황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또한 포대희 외에도 이 지역 인형 조각공예도 매우 유명하며 특히 강가주 (江加走 1871-1954) 선생의 작품은 현재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사진: 강가주 선생님의 목우 머리들. 포스가 장난이 아님. 





이 부분은 내용도 어렵고 예의 전통 에술 용어도 드글드글...ㅠㅠ

재미는 있다. 저 진강장중목우 극단은 오피셜 사이트도 있다. 

http://www.jjmojt.com/index.html

이곳. 해외 공연도 많이 하고 복건성에서 팍팍 밀어주는 듯하다....마는 그놈의 문화혁명... 



 


Posted by inabau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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