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국악 악기에 대한 강의를 잠깐 들었는데 국악이 고전 문학과 조화를 이룬 고사나 싯구가 굉장히 인상이 깊었다. 특히 거문고가 매우 재미었는데 거문고는 선비들이 매우 사랑한 악기로 선비들이 시흥이 도도해서 거문고에 싯구를 쓰거나 거문고에 대한 싯구를 남긴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금명이라고 한다.
금명(琴銘)
금이란 금지한다는 뜻이니 / 琴者禁也
삿된 마음을 금하는 것이다 / 禁邪心也
오현금은 옛날의 것이요 / 五絃古
칠현금은 지금의 것이어라 / 七絃今也
칠을 버리고 오가 되게 하니 / 去七而五
옛날의 음률에 합치되도다 / 合古音也
- 번역: 한국 고전 종합 DB
연산군 때 무오사화에 휘말려 죽은 조선시대 선비인 김일손 선생의 거문고 탁영금(보물 957호) 에 새겨진 문구이고 그 외에도 금을 하는 선비라면 누구나 외우고 있는 싯구라고 한다. 선비들이 간직한 악보 첫 장에도 저 금자금야를 친필로 쓰고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문신으로 새긴 차카게 살자. 같은 셈.
이날 들은 멋진 싯구 하나는 화담 서경덕의 무현금
無弦琴
소리를 듣는 것이 형체 없는데 듣는 것만 못하고, 형체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은 형체 없는 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니, 형체 없는 것을 즐겨야 그 줄거리[繳]를 알 수 있는 것이요, 소리 없는 것을 들어야 그 묘(妙)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번역: 한국 고전 종합 DB
금의 최고 경지는 무현금이라 여겨 무위를 중요시한 선비의 기상이 블라블라 기타 등등 이라고 한다.
그리고 제목으로 잡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이것도 탁영금에 새겨져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맞지 싶다. 이날 강의에 나온게 탁영금이랑 서경덕 외엔 달리 없었으니..
滄浪之水淸兮(창랑지수청혜) “창랑의 물이 맑으면
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창랑지수탁혜)창랑의 물이 흐리면
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내 발을 씻으리라.
사진: 보물 957호 탁영금. 대구국립박물관 소장
벽력에 금을 다루는 사람들은 소루용숙, 소환진, 육현지수 창 등등이 있는데 저 금자금야는 금 다루는 사람들의 차카게 살자이니 소환진 금 뒤집어 보면 琴者禁也 저 싯구가 있지 않을까 그런 뻘한 생각도 해 봤다.
근데 거문고 하악하악하던 조선시대 선비들이 조선 후기 청나라에서 들여온 생황의 음색을 들은 후에는 생황에 반해 생황이야 말로 선비의 악기! 오오오 생황! 봉황이 우는 소리가 이 같을 지어다! 오오오! 고급 수입품! 하면서 거문고 버닝에서 생황 버닝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조선 시대 후기라고 해도 사무역이 활발한 것도 아니었으니 청나라 가는 사신들한테 생황 하나 사다 주세요. 하는 셈이라 가격도 무척 비쌌다고 한다. 조선 후기 부의 상징은 생황과 막 유행하기 시작한 담배 였다고... 음악을 매우 사랑한 김홍도는 생황이 들어온 후 생황 들고 있는 신선 등의 그림을 수도 없이 그렸다 한다.
단원 신윤복이 그린 '연당의 여인' 인데 이 그림 속의 얹은 머리를 올린 여인은 한손에 담배, 한손에는 생황을 들고 있다. 해석하자면 난 부자예요. 그것도 아주 부자예요. 이 여인의 신분은 아마 기녀였을 테니 남자 친구가 부자예요...도 가능하겠다. 에르메스 버킨 백과 까르띠에 시계를 차고 무심한듯 하지만 눈에 잘 띄게 사진 찍는 것과 비슷하달까.
기승전생황으로 끝난 강의였지만 국악기에 대해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재미까지 있어서 국립국악원에서 하는 이런 종류의 강연이나 강습이 있으면 더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 봉황이 우는 소리라는 생황은 조선시대도 지금도 중국에서 대부분 수입한다고 해서 타오바오 가격을 알아봤는데 못 살 가격은 아니었다. 문제는 운지법부터 국내에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다는 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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